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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NMCD R18

숨쉼표 4,5

아주 옛날옛적, 시츄 드씨 덕질을 하던 오타쿠가 있었어요. 새로운 자극을 찾아 여기저기 기웃대던 오타쿠는 국내에서도 같은 장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답니다. 어머, 이건 꼭 사야돼! 망설임없이 카드를 소환했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리핑을 하던 것도 잠시 오타쿠는 조용히 시디에 흐린 눈 봉인을 걸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문득 방 한쪽 구석의 드씨가 생각나고야 마는데
 
살다보면 갑자기 내가 경험한 순간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놀랍게도 대강대강 건너 뛰어가며 들은 이 숨쉼표에서 살다가 간혹 생각나는 대사와 장면이 존재한다. 참 이상해. 대체 어디에 꽂혔던 걸까? 며칠 전에도 어김없이 이 드씨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올라서 파일을 뒤졌다. 옛날에 들을 땐 한국어라 내가 어색하게 느낀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들으니 어색함은 둘째치고 대본이 문제다. 올드한 대사는 물론이고 오직 청각으로만 승부보는 장르인 주제에 마가 뜬다. 이게 맞아?ㅋㅋㅋㅋ의미없는 대사 반복도 너무 많음. 너랑 있어서 좋다류의 발언을 쿨 타임 끝나기도 전에 하고 있다. 할 말 없으면 카와잏ㅎ로 대충 떼우려던 기떡물이 생각나는구나.

듣다듣다 대체 언제까지 하려나 싶어 총 재생시간을 봤더니 한 캐릭터당 1시간 40분이라 놀라버림. 이럴거면 확실하게 기승전결 잡힌 스토리가 있거나 시간 흐름을 빠르게 돌려서 대화주제를 새롭게 던져줬으면 좋았을 것 같은데 힐링으로 거진 두 시간을 채우려니 대사의 대다수가 빛 좋은 개살구였다. 아니 원래 달달물이 돌아보니 둘이서 꽁냥질이나 했다더라로 한 줄 요약이 가능하긴 하지만요 그래도 좀 너무했어요. 두 시간이 아까움. 한 시간 짜리에도 과몰입해서 10년도 다 된 작품 남주를 광광 울며 파는 인간도 있는데 존잼 각본으로 두 시간이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다채로운 캐릭터성이라도 남았어야 했는데 그마저도 납작하다. 연하남은 누나조아대형멍뭉이고 연상남은 그 시절 그 단어 벤ㅊ남임. 그게 끝이야. 뭔가 이렇다할 상상거리가 없어. 둘이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연애 시작했고 얼마나 됐고 성격차는 있는지, 어떤 식으로 서로를 대하는지, 주변 인간 관계든 요새 고민이나 소소한 습관같은 걸 은근슬쩍 대사에 넣어달라고. 그런 식으로 캐릭터성을 소복히 쌓아주세요 무작정 예쁘다예쁘다하지 말고ㅠ끝없는 부둥부둥에 저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거짓말입니다. 차라리 정신 놓고 잠이나 들었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수면드씨로써 기능할 수도 없게 또박또박한 발음이 고막에 직통으로 꽂아주는 대사덕에 오히려 정신이 또렷해짐. 맨정신으로 1시간 40분을 버틸 자신이 없어서 중간에 딴 드씨로 도망갔다. 그래서 내용 반만 알아요. 제대로 들은 적이 없음ㅎㅋ

성우분들은 좋았다. 유튭의 검증되지 않는 발성과 발음으로 오염된 고막이 정화되는 느낌. 한국어는 정말 아름답구나. 맑고 청아한 발음상 드려야함.
목소리나 컨셉은 연상남이 더 좋았는데 기억에 더 오래 남은 건 연하남이었다. 누나를 웃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어떤 헛소리도 마다않는 성격이 오글거리는 대사에 합당한 이유를 부여함. 그리고 가끔 생각난다던 장면도 연하남이었다. 케이크 만들어서 누나한테 가져간 적이 있었는데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머리에 이고 갔었다는 대사 들은지 5년은 지난 것 같은데도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음. 본인은 너덜너덜해졌어도 멀쩡한 케이크를 뿌듯한 표정으로 가져다줬을게 좀 귀여움. 그리고 연하남 목소리 반듯하고 깔끔해서 이 놈이 누나 앞에서만 애교부린다는 적폐해석이 가능한 점도 마음에 들었어요.
연상남은 목소리와 대사가 미친 시너지를 발휘하는 바람에 오타쿠 관념적 38세같음. 나이차 커플 같다고. 홍콩 출장에서 귀국한지 얼마 안 됐다는 설정이라 자꾸 홍콩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덕에 남주가 자꾸 그 시절 홍콩 영화 주인공처럼 상상됨. 역시 30후반일 것 같음. 오히려 좋아. 남주가 도라에몽마냥 자꾸 뭘 꺼내서 주는데 너무 줘서 내가 뭘 받았는지도 잊었다. 딱뚝콱의 껍데기를 가진 다정남이라는 느낌을 받아서 약간 이도저도 아니게 애매했다. 말투랑 내용이 다정하긴한데 내가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 탓이다. 왕한테 발 마사지를 받는 무수리가 된 느낌. 자꾸 수발을 들려고 하시는데 제가 이런 걸 받아도 되는건가요?하고 안절부절 못하게 됨. 연하남한테는 당당하게 다 받아놓곤ㅎ
둘 중엔 연하남을 좀 더 많이 들었는데 왜냐면 연상남은 혹시 할 말 없으신가용…?싶을 때가 많았다. 오디오 빈 곳이 유독 많다고 느낌. 연하남이 혼자 조잘조잘 잘 떠들어서 그런가. 좋긴 좋았는데 연상남쪽이 장벽 더 높았다.

숨표랑 쉼표중에 어느게 19지? 하여튼 19트랙은 제정신으로 못 듣겠다. 시도해봤지만 전부 실패함. 대사 미칠 것 같아요. 그 대사들을 역으로 일본어로 바꿔봤는데 시츄에서 잘 듣던 대사들이라 더 미칠 것 같음. 일본의 시츄 온나타치 당신들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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